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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도지정유산

대승사 윤필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

시도유형문화유산
  • 주소 / 문경시 산북면 전두리 17
  • 문의처 /
  • 지정번호 /
  • 지정일자 / 1997.12.19
  • 소개

  • 대승사 윤필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지감(유형문화유산, 1997.12.19. 지정)



    윤필암에 대하여는 「 상산지 」· 「 대승사사적 」·「 동문선 」등에 비교적 자세한 기록이 있다. 먼저 「 대승사사적 」에 따르면 윤필암은 1380년(우왕 6) 각관대사가 창건하였다 하였으며, 「 동문선 」의 이색기에는 이때 각관과 함께 찬성 김득배의 부인 김씨에 의하여 조성되었다고 하였으며, 고려 나옹화상의 출가처임을 밝히고 있다.

     「대승사사적 」에는 1645년(인조 23)서조 · 탁잠 양사 중건, 1765년(영조41) 야운화상 중건, 1806년(순조 6) 취운종백 중건, 1885년(고종22) 창명장로 중건이라 하였다.



    이 불상은 사중 전언으로는 1950년대 중반 문화재 절취범에 의하여 밤중에 도난당하였으나 현몽하여 " 절은 지키지 않고 잠만 자느냐" 는 질책에 여러 스님들이 깨어나 살펴보니 불상이 도난되었는데 절취범은 멀리 도망치지 못하고 담장밖에 밤새 헉헉거리고 있으므로 이를 붙잡아 불상을 도로 찾았다는 일화가 있다. 이 때 좌수의 끝 부분이 부러져 수리되었을 뿐 다른 손상은 없었다.

    불상의 총고는 32㎝ ,슬폭 23㎝에 견폭 16㎝, 두고 11㎝의 소형 목불에 도금되었다.

    개금원문에 따르면 90여년 전에 최후로 개금되었음을 알 수 있는데, 이 때에 고금으로 인하여 불상 본래의 모습에 변화가 이룩된 것으로 보인다. 불상의 얼굴은 계란형으로서 조선시대 후기 불상양식과는 다르고, 통견의 법의는 비교적 단조롭게 처리되었으며, 삼도가 역연하다. 그렇다고하여 고려시대까지 소급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하여는 두터운 도금이 입혀진 현상으로는 속단하기 어려운 실정이다.

    불상은 두터운 한지로 정교하게 만들어진 검정색 감실내에 봉안되어 있었는데 이 감실은 불상 조성 이후에 제작된 것으로 보였으나 이 역시 그 제작 시기가 오래 되었을 것으로 짐작되었다. 불상의 저부에는 복장 장엄곰이 판목으로 밀폐되어 있었으며, 이는 3개의 철정으로 고정되었는데 그 내부는 개비하지 않았다. 다만 복장 장엄공 외부에는 2회에 걸친 개금원문이 주서된 다라니로 밀봉되었으나 윤필암 감원 은우스님 및 대중들의 양해 아래 조사 후 복원 할 수 있어 불상의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다. 원문은 1851년(철종 2) 개금원문과 1908년(순조 2)의 개금원문 2종이므로 불상의 조성 하한은 1851년임을 알 수 있었다.

    이 불상은 약 90여년 전 최후로 도금되어 현재 이르고 있으나 도금으로 인하여 불상 양식에 변화를 주고 있다. 다만 계란형의 얼굴 등의 형태에서 불상의 형식은 그 조성이 더욱 올라갈 것으로 파악된다. 그러나 그 상한의 정확한 연대는 불상 복장의 개비가 첩경이겠으나 이것이 불가능한 현재로서는 위에 소개된 원문 및 불상의 양식에 의거 조선시대 중기, 15 ~ 16세기 경의 조성으로 비정할 수 있을 것이다.

    또한 소형의 목조불상이 희귀한 현실을 감안하여 주어진 현상하에서도 문화재의 가치가 있다.

     


페이지 담당자
  • 문화예술과 (054-550-6403)
최종 수정일자
2024-05-02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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