생애
운강 이강년

운강 이강년
운강 이강년은 1858년(철종9) 12월30일(양력 1859년 2월18일) 경북 문경시 가은읍 상괴1리(도태리) 455-2번지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. 효령대군(조선 태종의 차남)의 19세 손으로 호는 운강(雲崗), 자는 낙인(樂寅)이며, 태양이 어머니의 입으로 들어가는 꿈을 꾼 뒤 잉태했다하여 아명을 양출(陽出)이라 하였다.
운강이 태어날 때 집 앞 둔덕산이 연일 크게 울어 마을 사람들이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였는데 운강이 태어나자마자 울음을 그쳐 태어난 아기가 장차 큰 인물이 될 것이라 하였다. 3세 때에 옥편에서 신체부(身體部)의 속자(屬字)를 알 만큼 총명하였으며, 8세 때에는 아버지를 여의고 조부로부터 경사(經史)와 병법을 익히는 등 어린나이에 이미 문장과 학문이 성숙하였다. 장성한 운강은 8척 2촌의 장골로 풍채가 늠름하고 담이 크며 위엄이 있어 무리를 압도하였으며 말소리가 우렁차서 대장부의 기상을 지녔고 무예와 병서 및 그림에서도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.
22세 때인 1880년(고종17) 3월6일(음력)에 정시 무과에 합격하여 종 6품인 절충장군 행용양위부사과(折衝將軍 行龍驤衛副司果)에 올라 선전관(宣傳官)이 되었으나 임오군변과 갑신정변 등 정국의 혼란과 친일파의 행동에 분격하여 1884년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였다.
약력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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시기 | 내용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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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58년 12월 | 경상북도 문경에서 이기태와 의령남씨 사이의 외아들로 출생 |
1880년 | 무과에 급제하여 행용양위부사과에 올라 선전관(宣傳官)을 역임 |
1884년 | 갑신정변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 |
1884년 | 갑신정변 때 벼슬을 버리고 낙향 |
1896년 2월 |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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1896년 3월 | 제천의 호좌의병부대(湖左義兵部隊)와 합진하고 유격장(遊擊將)으로 활동. |
1896년 8월 | 부대를 해산하고 단양 금채동에서 은거. 이때 속오작대도(束伍作隊圖)를 작성하다. |
1897년 5월 | 만주 서간도로 건너가 유인석(柳麟錫)을 만나고 이어 장백·무송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하다가 7월에 귀국하다. |
1907년 7월 | 다시 의병을 일으키다.(광무 황제 밀지를 받아 의병을 일으킴) |
1907년 8월 | 영월 주천 강가에서 40여 의진이 집결한 가운데 의병대장에 추대 됨. |
1907년 9월 | 문경 갈평전투에서 대승. |
1907년 11월 | 죽령·단양 고리평·백자동 전투 대승. |
1908년 | 용소동·백담사·강릉·서벽·재산 전투 대승. |
1908년 7월 | 청풍 작성 전투에서 적탄에 발목을 맞아 피체되다. |
1908년 10월 | 서울 서대문 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다. |
1962년 3월 | 대한민국 건국훈장 ‘대한민국장’을 추서받다. |